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과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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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처음으로 어학연수를 위해 캐나다 밴쿠버로 장거리 비행을 했다. 당시 유학원에서 에어캐나다 항공편을 예약해 주었고 돌아오는 비행편도 오픈형(?)으로 준비해 주셨는데, 전화로 예약하면 언제든 귀국 날짜를 정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당시 유학원 직원이 “에어캐나다는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사라 아시아나항공으로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한데, 가입하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마일리지는 적립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지금이었다면 바로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번호를 불러 줬을 텐데 그때는 ‘내가 얼마나 해외를 다니겠어’, ‘항공사 회원가입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 짧은 생각에 마일리지 적립을 하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가장’ 아까운 마일리지는 그때 에어캐나다를 타고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하지 않은 거다. 아직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여행을 가고 항공사 마일리지를 끔찍이 챙기는 내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동산, 금융자산 등에 이어 가장 소중한 자산이 항공사 마일리지다. 쇼핑몰, 주유소 포인트 등 잘 쓰지도 않는 거 소멸된다고 메일이 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항공사 마일리지는 ‘금쪽같은 포인트’이다.

주변에도 “자녀 낳으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는 꼭 만들어주라’라고 적극 권한다. 평생을 살면서 비행기 타는 일은 점점 많아질 거고 국적 항공사 가입은 필수라는 생각이다. 부모가 성년이 된 자녀에게 세계일주 선물로 평생 모은 마일리지를 선물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올해 4월 대한항공, ‘지역’에서 ‘운항거리’로 새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 시행

대한항공이 오는 4월부터 ‘지역’에서 ‘운항거리’로 새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을 시행한다는 소식으로 여론이 시끄럽다. 몇 년 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는데 코로나 등으로 인해 연기되었다가 올해 4월에 결국 시행한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고 심지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나서 한소리 하자 대한항공은 부랴부랴 마일리지 좌석을 늘리겠다는 등의 급처방을 내놨다.

대한항공은 몇 년간 수많은 고객들이 마일리지 개편을 ‘개악’이라며 비판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국토부 장관이 한 소리하자 급 긴장하는 모드다. 그런데 원 장관은 한번이라도 본인이 직접 마일리지 좌석을 구매해 봤을까 의문이다.

오는 4월부터 개편되는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무엇보다 대한항공이 내놓은 좌석을 늘리겠다는 대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적사 마일리지는 우리에게 평생에 걸친 문제이자,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정말 개악일까?

과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는 유효기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항공사들의 부채로 잡히고 항공사 트렌드 변화와 수익성 개선 등으로 인해 ‘유효기한 10년’으로 변경되었다. 이때도 많은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외항사와 비교했을 때는 그렇게 ‘개악’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마일리지 유효기한이 없지만, 루프트한자, 캐세이퍼시픽, 타이항공 등은 3년에 불과하다. 심지어 아메리칸 항공은 유효기한이 18개월에 불과하다.(유효기한 이내에 마일리지 적립 및 구매하면 연장 가능.)

코로나 이전 루프트한자 마일리지를 모아서 하와이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3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루프트한자에 메일을 보내 유효기한 연장이 가능한지 질의를 한 적이 있다.

 

대한항공 A380퍼스트클래스./사진=남다른디테일

돌아온 답변은 “유럽에는 코로나 상황에도 항공편이 잘 운영되고 있어. 항공 이외에도 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알아봐”. 그냥 루프트한자 마일리지를 버렸다. 그 이후에는 루프트한자는 최대한 기피하게 되었다.

어쩌면 대한항공 마일리지는 다른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와 비교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럼 왜 지금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개편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 우려, 급작스레 올라간 항공권 가격, 기내식 및 전반적인 서비스 저하 등 여러 가지 이슈와 맞물린 탓으로 해석된다. 대한항공이 아직 아시아나항공과 합병도 하기 전인데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합병하면 어떤 일이 또 벌어질까 하는 불안감. 이런 점들이 마일리지 개편의 불만으로 표출되고 있는 듯하다.

또 개편안이 고객들이 선호하는 장거리 노선에는 ‘개악’이 됐는데, 선호하지 않는 단거리 노선을 개선한 것을 두고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신용카드사 등을 통해 열심히 마일리지를 팔아 놓고는 마일리지 가치를 떨어뜨리는 개편을 한다고 하니 누가 가만히 있을까. 자산 가치 하락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고객 및 국민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신뢰를 얻지 못했다.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식./사진=남다른디테일

“대한항공이 불만이면 외항사 타면 되지 뭐가 불만이야”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분명 항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일 거다. 국적 항공사는 국민들의 해외 비즈니스, 여행, 신용카드, 안전 등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 에어프랑스, 일본항공 마일리지 적립되는 신용카드가 출시된 적이 있나? 직항으로 운행하는 외항사들이 얼마나 되나.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는 적립 환경의 변화, 항공사 트렌드 변화 등으로 개편될 수 있다. 호텔 마일리지는 거의 매년 개편된다.(대부분 안 좋게 개편) 그러나 이번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은 독과점 이슈, 기내식 서비스 저하 등 여러 이슈들과 맞물려 고객들의 불만으로 표출된 측면이 크다. 항공사 마일리지에 대해 조금만 안다면 이게 대한항공의 ‘꼼수’로 보일 수 있다.

대한항공은 단기 처방으로 마일리지 좌석을 늘리는데 그칠 게 아닌, 신용카드 마일리지 적립률을 높이거나, 이미 적립된 마일리지는 기존 방식대로 사용하게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 및 고객과의 신뢰 회복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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