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을 택하면서 정체성 잃었다’는 비판 끊이지 않아
국적항공사가 가져가야할 국가의 정체성 살리지 못해
조중훈-조양호-조원태로 이어지는 단순한 사기업 아냐
지난 11일 공개된 대한항공의 신규 CI(Corporate Identity) 및 슬로건 등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기업의 CI가 변경된 이후, 호불호도 있고 논란도 있었지만, 이번 대한항공처럼 논란이 큰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 ‘불호(不好)’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의 태극기에도 들어가 있는 태극문양이 이상하게 변형된 점이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태극은 음양오행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미니멀을 택하면서 정체성을 잃었다’, ‘KLM항공사 기체와 유사하다’ 심지어 북한 비행기 같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SNS에는 네티즌들이 대한항공의 CI를 직접 디자인해 호응을 얻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대한항공의 상징과도 같았던 ‘Excellence in Flight’도 ‘Anywhere is Possible’로 변경됐다. 대한항공 광고에 굵직한 남성 목소리의 ‘Excellence in Flight’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어메니티, 담요, 접시 등도 모두 바뀌었다. 퍼스트클래스 기준 베딩은 이탈리아 침구 브랜드 프레떼, 접시는 프랑스 브랜드 베르나르도, 커트러리는 크리스토플, 어메니티와 파우치는 영국 브랜드 그라프 등으로 변경됐다.
대한항공이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항공사인 아나항공의 경우 슬로건은 ‘inspiration of JAPAN’이다. 이 슬로건만으로도 항공사를 통해 일본의 자부심을 전 세계로 알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나항공 퍼스트클래스에서 제공하는 어메니티는 일본 뷰티브랜드의 시세이도의 최고급 라인인 ‘더 긴자’가 제공된다. 헤드폰은 일본 브랜드 ‘소니’이며, 라멘은 일본 브랜드 ‘잇푸도’가 제공된다. 기내에서 일본 사케를 경험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녹차는 당연히 일본 녹차이다.
아나항공의 철학은 아나항공을 이용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는 듯하다. 핀란드 대표 항공사 핀에어는 자국 브랜드인 마리메코의 담요를 제공한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국적 항공사들을 경험해 보면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비교해 41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뀐 대한항공에서는 과연 우리 것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디자인의 호불호를 떠나, ‘우리의 것’을 강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리서치를 하지 않았던 점이 가장 아쉽다.
삼성전자와 스타벅스 등을 디자인한 리핀코트라는 회사에 이번 CI 등 디자인을 맡겼다고 하는데, 그 회사가 우리의 것을 얼마나 공부했을까. ‘상모놀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공감하기 어렵다. 또 그걸 컨펌한 대한항공 오너 및 경영진들의 깊이감에도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왜 국민들이 한 기업의 CI 및 디자인 변경에 이처럼 민감한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국적항공사의 회원번호는 어쩌면 주민등록번호 다음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번호가 아닐까 한다.(여권번호는 만료 이후 변경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주민번호와 함께 가장 오랜 기간 함께 가져가는 번호는 국적항공사 번호일 것이다. 또 그 안에는 ‘마일리지’라는 소중한 자산이 들어있기도 하다.
대한항공이 단순한 사기업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라면 전 세계에 대한민국 문화 정체성을 간직하고 문화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국민들을 안전하게 이송해야 할 책임이 있다.
조중훈-조양호-조원태로 가업을 이어가는 단순한 사기업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