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더글로리 시즌2가 시작된다고 해서 밤을 새워 정주행했다. 마침 이날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서 밤 11시부터 우롱차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열심히 봤더니 그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었다.
시즌2를 보면서 지루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허리도 아프고 여러 힘든 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잘 봤다고 말하고 싶다. 시즌1보다는 약했고 반전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권선징악’ 스토리라 실망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가 만약 이를 권선징악으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더 큰 파장을 낳았을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안전빵’을 선택했다.
시즌1보다는 약한 어쩔 수 없는 ‘권선징악’
더글로리의 전체적인 주제는 억울하게 저 세상으로 간 윤소희의 ‘씻김굿’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한을 풀어준 무당은 문동은 역의 송혜교.
드라마가 어쩜 이렇게 문동은이 짜놓은 틀대로 움직이는지 싫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선이었다는 생각이다.
김은숙 작가는 더글로리에 다양한 기호학을 넣어놓고 있다. 드라마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소재인 듯하다.
과거 학교 선생이 문동은을 때리기 전 손에서 시계를 푸는 장면과 고데기, 이사라가 머리에 꽂고 다니는 연필, 그것이 친구 차주영을 찌르는 도구로 사용된다.
편집숍의 파란색 쇼핑백, 초록색의 구두, 손숙의 역할 등 여러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작가는 스토리, 캐릭터, 기호학 등을 섬세히 담아내 수작으로 완성시켰다.
특히 더글로리를 보면서 작가에게 혀를 내둘렀던 건, 사립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 교육감인가를 동성애자로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성애자는 어딘가 abnormal한 것일 텐데, 그렇게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결혼도 한 중년을 동성애자로 그리다니, 게다가 그와 사귀는 사람이 운전사였다니. 운전사가 그를 차량 앞좌석에 태우는 걸 보고 사귀는 걸로 해석하는 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작가는 정말로 예민한 안테나가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더글로리’의 기호학
남편이 운전사와 함께 차를 타고 다니는 걸 의심하는 부인이 얼마나 될까.
김은숙 작가의 학력을 바로 찾아봤더니, 서울예대 문창과. 그런 예민한 감각을 학교에서부터 경험적으로 터득했을 수 있었겠다는 느낌이 왔다.
더글로리 시즌2의 예고편에서는 박연진의 공격, 주여정의 반전 등 여러 예상치 못한 스토리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가 되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컸다. 주여정도 마지막에 예상보다 약해서 아쉬웠다.
문동은은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갔다. 마지막에는 사랑까지 쟁취했다.
대포폰을 쓰면서 자유자재로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겁도 주고 SNS 등에도 퍼트렸다.
그런데 문동은은 경찰 조사에서도 “그게 불법인가요”라고 물으며 이 모든 게 ‘합법적인 복수’였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대포폰 자체가 불법이다.
해원의 씻김굿, 무당은 송혜교
더글로리에는 박연진과 친구들에 의해 학폭을 당한 인물이 문동은 외에도 윤소희, 김경란 등이다. 윤소희는 안타깝게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했고 김경란은 학폭을 당했지만, 그 친구들을 떠나지 못한다. 왜 김경란이 그 편집숍에서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김경란은 학창시절 문동은의 학폭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인물로 나온다.
아마도 학폭을 당해본 사람들 상당수는 김경란과 비슷할 거다. 아프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터트리고 복수할 수 없는 나약함.
어쩌면 문동은 같은 사람이 특이하고 드센 성격. 문동은 같은 성격이 지지를 받기보다 적이 많은 성격일 수 있다.
그래도 한 사람(윤소희)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는 해원의 굿을 펼친 문동은에게 박수를.
방송인, 승무원, 골프장사업가, 미술가 등 사회 지도층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학폭의 가해자로 묘사되었고, 그들이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변명의 변명을 하며 피해가려 했다는 것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얼마나 인정하고 살까,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며 법망을 피해가는 모습은 우리 주변, 혹은 뉴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폭 가해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주변의 모습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차 안에 있다가 문콕 사고를 당했는데, 가해 차량이 “차에 어떤 피해를 줬고 문콕이 어디에 발생했는지 증명하라”는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남의 자산에 피해를 주고 문콕을 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이 우선일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걸 인정하면 보상을 해줘야하는 한다는 걸로 인식하는 듯하다. 법적으로 알아보니 그 피해는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거다. 문콕을 당한 사실만 중요한 게 아닌, 그걸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차량 정비소를 가서 증명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대한민국에 사는 게 참 슬프다는 생각.
특히 넷플릭스에서 가장 저주하는 인물은 문동은의 엄마였다. 학폭 가해자보다 더 나쁜 사람. 인륜위에 천륜을 이용하는 그의 모습, 어쩌면 딸을 팔아먹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한 캐릭터 설정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문동은에게 제일 큰 상처를 준 인물은 엄마였다.
더글로리는 장대한 서사가 있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인물의 세밀한 묘사, 밀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곳곳에 숨어있는 기호들, 우리 주변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폭력성 등을 제대로 보여준 드라마로 평하고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며, 작가는 정말로 아무나 되는 게 아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보다 포기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