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내세우며 브랜드와 기업의 역사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
가격은 ‘신라면 블랙’과 유사한데 맛은 ‘신라면’과 매우 유사
비슷한 맛의 라면을 더 비싼 가격 주고 선택할 소비자 얼마나 될지
삼양식품이 이달 3일 내놓은 ‘삼양1963’은 회사에 있어서 복합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신제품이다.
삼양식품 내에서는 오랜 기간 ‘우지(牛脂, 소기름)’는 금기어로 통했다. 1963년 출시된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은 우지를 이용해 면을 튀기면서 특유의 고기 향과 고소한 맛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소비자들에게 진한 풍미가 곧 ‘라면 본연의 향’이었다. 하지만 1989년 ‘우지 파동’을 겪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소비자 불신이 커졌고, 삼양식품은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이후 삼양식품은 199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시장의 신뢰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 삼양식품 시장점유율은 60%대에서 10%대로 급락했다.
이후 삼양식품이 부활한 배경은 ‘불닭’ 영향이 절대적이다.
신제품 삼양1963은 회사를 존재하게 했으면서 동시에 벼랑 끝으로 몰고갔던 ‘우지’로 만든 라면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지닌다. 기업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기보다 다시 꺼내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의 징표이다.

실제 삼양1963을 출시한 날은 우지사건이 발생한 1989년 11월 3일로부터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이었다. 삼양식품은 이 날짜에 신제품을 공개하며 브랜드의 정통성 계승과 기술 혁신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동시에 삼양1963은 삼양 브랜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프리미엄 미식 라면이다. 가격대는 4입 묶음 기준 6150원으로 기존 삼양라면 대비 약 2배 가격이다. 농심 신라면보다 비싸며 ‘신라면 블랙’과 비슷한 가격이다.
삼양1963은 동물성 기름 우지와 식물성 기름 팜유를 황금 비율로 혼합한 골든블렌드 오일로 면을 튀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내 인스턴트 라면들이 면을 튀길 때 팜유를 사용한다고 봤을 때, 우지는 오히려 건강에 덜 해로울 수 있다. 팜유가 몸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인터넷만 조금이라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삼양1963의 디자인은 백미당이나 교촌필방의 디자인 컨설팅을 했던 비마이게스트라는 회사가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유사성을 지닌다. 기업과 브랜드의 역사성을 담고 현대적으로 잘 표현한 디자인으로 보인다.
라면에는 면과 액상스프, 후첨 분말 후레이크가 들어가 있다. 특이한 점은 끓는 물에 면과 함께 액상스프를 먼저 넣고 4분 뒤에 후첨 분말 후레이크를 넣는다는 점이다. 라면을 끓일 때 분말스프를 먼저 넣는 경우가 많은데 삼양1963은 액상스프를 먼저 넣는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삼양1963을 실제 먹어 봤을 때 매운맛과 얼큰한 구수한 맛이 동시에 전해진다는 점이 특이했다. 신라면 블랙이 구수한 맛이 강하다면 삼양1963은 매운맛과 동시에 구수한 맛이 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먹을수록 매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스프에 청양고추, 홍고추 등이 들어간 영향이 커 보인다. 불닭으로 성공신화를 이룬 삼양식품으로서는 이 매운맛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신제품을 준비하며 매운맛의 원조기업임을 지키고 싶었던 의지도 있었던 것 같다.
이후에 일반 신라면을 먹어 봤다. 그런데 삼양1963과 신라면 맛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국물에서 붉은색의 지방 점성이 생기는 점도 매우 유사했다. 물론 맛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다.
삼양1963은 가격 면에서는 신라면 블랙과 경쟁할 수 있겠지만, 맛으로 봤을 때는 신라면과 경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맛은 비슷한데 2배 가까이 더 비싼 삼양1963을 선택할 소비자들은 얼마나 될까. 건강을 위해 라면을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우지가 들어가서 더 비싼 가격을 주고 비슷한 맛의 라면을 사 먹을 소비자들은 얼마나 될까.
우지 파동으로 삼양식품이 피해를 봤고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맞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그런 것까지 고려할지는 의문이다.
신제품을 내고도 삼양식품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맛과 가격, 그 어떤 것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