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공개 없이 중소기업 즉석밥 성장세만 공개, 햇반의 빈자리 쿠팡 자회사도 수혜
“쿠팡은 올 들어 1~5월의 식품 판매 추이를 분석한 결과, 중견기업 즉석밥 제품이 최고 50배, 중소기업 제품은 최고 100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이 지난 11일 배포한 ‘공정하게 열린 온라인 매대의 힘…대기업 그늘에 가려진 中企 쿠팡서 빛 본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내용 일부분이다. 얼핏 보기에는 쿠팡 내에서 사업을 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의 데이터 자료인가라고 흘려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쿠팡은 좀처럼 내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자세히 보면 ‘국내 식품시장에서 수십 년간 독점체제를 구축하던 독과점 식품기업’, ‘즉석국, 냉동만두 등 특정 독과점 대기업’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다.
현재 쿠팡과 갈등을 빚고 있는 CJ제일제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자료이다.
지난해부터 쿠팡과 CJ제일제당은 납품가 갈등으로 CJ제일제당의 ‘햇반’ 등을 쿠팡의 로켓배송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CJ제일제당은 네이버, 신세계, 티몬 등과 ‘반쿠팡’ 동맹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이 이날 자료를 배포한 배경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내 즉석밥 시장 절대적 1위인 ‘햇반’이 없어도 즉석밥 판매는 여전히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쿠팡의 자료를 자세히 보면, 햇반이 빠지고 유피씨라는 중소기업이 올해 상반기 판매가 전년 동기대비 1만407% 증가했다고 되어 있는데, 정확한 매출은 없다. 성장세만 있을 뿐 매출은 없는 셈이다.
또 CPLB(씨피엘비) 곰곰 즉석밥과 자체 제조 즉석밥 ‘우리집 밥’을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 시아스도 7270%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성장률만 있을 뿐 거래액이나 매출액은 비공개다.
쿠팡에 문의했을 때 “매출은 비공개가 원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쿠팡 전체 즉석밥 매출 증가 여부도 공개하지 않았다.
소비자나 취재진들이 궁금한 것은 햇반의 빈자리를 이들 중소-중견기업이 채우고 있느냐 여부이다. 만약 햇반이 쿠팡에서 1만원치 판매하고 있었는데, 중소-중견기업이 쿠팡에서 10원치 판매하다 1만% 증가해봤자 1000원에 불과하다.
특히 쿠팡이 자료에 언급한 씨피엘비는 쿠팡의 PB제품을 만드는 자회사이다. 햇반이 쿠팡 로켓배송에서 빠짐으로서 쿠팡의 자회사도 수혜를 입었을 수 있다. 지난해 씨피엘비는 1조3570억원의 매출에 7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정도로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쿠팡은 ‘공정하게 열린 온라인 매대의 힘’이라고 제목까지 달았는데, 그럼 햇반이 판매되는 동안 ‘불공정 온라인 매대’를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것인가. 쿠팡의 자회사인 씨피엘비는 협력업체들과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자료이다.
쿠팡이 이 자료를 낸 정확한 이유는 뭘까. 햇반이 없어도 즉석밥 매출이 잘 나오고 있다는 것인가, ‘중소-중견기업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불공정했던 관행이 공정하게 변화됐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