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마인 등의 패션브랜드로 유명한 한섬이 제대로 한방을 날린 거 같다. 패션에서 뷰티쪽으로 확대하면서 오에라 라는 고가의 화장품 브랜드도 런칭했지만 큰 두각을 내지 못했다.(내 생각) 경쟁기업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패션에서 뷰티쪽으로 사업 재편을 잘 한 반면 한섬은 늦은 측면이 컸다.

​그런데 한섬이 이번에 제대로 칼을 갈았다.

​청담동에 리퀴드퍼퓸바라고 프랑스 향수 편집샵을 수입해 런칭했는데, 이게 대박이다. 이 매장을 둘러보면서 향후 향수 트렌드와 향수 소비에 대한 많은 생각도 들었다. 이 편집샵 런칭으로 한섬은 큰 돈을 벌거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향수 브랜드를 알리고 향수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화장품도 과거 대기업 브랜드나 수입 브랜드에서 개성있는 소규모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클린뷰티, 비건 등 여러 트렌드를 낳은 거 처럼 향수도 니치향수나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나 향을 넘어 ‘스몰 럭셔리’로 가지 않을까 짐작된다. 아무나 알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향, 향수 브랜드를 말해도 대부분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향수 브랜드. 향수도 남에게 알기기 위한 것에서 나만을 위한 향기와 브랜드로 크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한섬은 현대백화점 계열이니 제대로만 만들면 백화점, 온라인, 면세점 등의 유통채널을 통해 커 나가기가 매우 용이하다.

리퀴드퍼퓸바 청담 플래그십스토어

청담사거리에서 갤러리아 방향에 네이처포엠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1층에 오픈한 리퀴드퍼퓸바 청담플래그십스토어. 작년쯤 한섬에서 향수 편집샵을 수입한다는 얘길 듣고 “왜 향수 브랜드도 아니고 편집샵을 가져오지” “향수 편집샵을 수입할 정도로 그리 독특하나” 등 여러 의문점이 있었다.

​그런데 리퀴드퍼퓸바를 통째로 가져온 이유가 있었다. 개별 브랜드로 수입하는 거보다 전체로 가져오는게 단번에 향수 사업 라인업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내 생각) 이 편집샵에 입점한 향수 브랜드만 10개가 넘을 거 같고 향별로는 100개가 넘으니. 한섬은 단번에 향수 브랜드 10여개 이상을 수입하는 회사가 된 것이다.

리퀴드 퍼퓸바는 2013년 파리 마레지구에 첫 론칭한 편집샵이며, 인기를 끌면서 봉마르쉐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다고 한다. 리퀴드 퍼퓸바에서 판매하는 향수 브랜드는 다른 곳에서도 판매하겠지만, 판매하는 향수를 매우 까다롭게 선정한다고 한다. 니치향수 마니아들에게는 성지같은 곳이 아닐까.

​또 우리나라에서 편집샵 브랜드 대충 만들어서 향수 편집샵 내는 거 보다 검증된 프랑스 편집샵을 통째로 가져오는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 이제 좀 이해가 된다.

파리 리퀴드 퍼퓸바도 비슷한 인테리어인지 모르겠으나, 청담동은 현대백화점이 잘하는 보타닉과 그리너리 인테리어에 집중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수족관이 매장 중간을 차지한다. 실제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인테리어가 매우 놀라웠다. 천장은 자연채광은 아니지만 자연채광이 느낌이 나도록 했다.

특히 놀라운건 매장안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조화가 아닌 생화라는 점.

향수 매장 하나 운영하는데 생화 관리하고 수족관 관리하고 인력과 비용이 꽤 들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이런 매장을 운영할때 생화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거다.

​역시 플래그십스토어이니 이런 투자를 하는가보다. 회사 임원진들도 직원들에게 판매나 매출에 신경쓰지 말고 향수에 대해 알리고 브랜드를 알리는데 집중하라고 했다니 말 다했지.

이 레몬마저도 진짜라고 한다. 놀랍지 않나. 이 나비는 실제 나비는 아닌데, 이것도 누구의 작품인거 같다.

이제 향수 브랜드를 보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향기들이 우리를 에워싸는데 향들의 비밀이 궁금했다. 디비케이라는 향수 브랜드인데 종류가 엄청났다.

​직원분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백과사전같은 DBK 패키지. 리퀴드퍼퓸바에서 가장 주력 브랜드라고 한다.

브랜드를 다 처음 접하는 거라 어질어질했다. 그동안 향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명함도 못내밀거 같았다.

향기도 얼마나 다양한지. 영화극장, 커피숍 등 장소에 영감을 받아 제조된 향수도 있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 개인의 감정에 따라 제조된 향수 등 참 다양했다. 이 모든걸 다 맡아보려면 하루라도 부족할 거 같았다. 머지 않아 향수 덕후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직원분들도 언제든 와서 시향을 하라고 하신다. 직원들도 단순 판매사원이 아닌, 엄청난 전문성이 느껴졌다.

​카운셀링, 도슨트 등의 표현을 쓰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직원분들 전문성 인정 인정. 어릴적 압구정에 한국화장품에서 어반스페이스라는 화장품 편집샵을 낸 적이 있다. 거기서도 일찌기 본적없던 화장품 브랜드를 엄청 접했고 그 브랜드를 하나하나 공부하기 위해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난다. 구매는 많이 못했지만 직원분과 화장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게 매우 행복했던 기억.

​그 매장은 결국 망하기는 했지만, 뷰티 브랜드의 다양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처음 론칭해 지금 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연 브랜드도 꽤 된다.

세면대에 걸려있는 수건인데 실제 사용은 안하는 거 같고 장식용인 듯. 남프랑스의 청량한 느낌.

논픽션과 패키지가 유사한듯. 처음 접하는 향수 브랜드에 놀라고, 그리너리한 인테리어에 또 한번 놀라고 직원들의 프로페셔널함에 또또 놀랬다. 리퀴드 퍼퓸바는 당분간 나의 아지트가 되지 않을까하는 예감.

​아 그리고 가격대를 알아보니, 백화점과 비교해 높은 편도 아니었다. 20만원대가 대부분이며 7만원대도 향수도 있었다. 구글로 프랑스 현지 판매가도 조회해 봤는데, 큰 차이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10% 할인도 해주고 한섬 회원가입하면 10% 적립도 되고 첫 구매고객은 3만원 금액권도 받을 수 있다고.(광고 아님. 여기 아는 사람 없음) 이런거 다 받으면 프랑스 현지보다 더 저렴하게 살수 있을거 같다. 선물할때도 백화점에서 그렇고 그런 향수 선물하는 거보다 이런데서 남다른 향수를 선물하는 거도 괜찮을 거 같다. 짝퉁 우려도 없다.

이 향수가 50ml에 7만원대. 일부 제품은 벌써 품절이라고 한다. 파리편집샵콜레트에 매장 향수로 쓰이기도 한 제품도 있다고 한다.

끝은 여기가 아니다. 향수까지 열심히 시향하고 직원분에게 향수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들은 것만도 감사한데, 마지막에 차까지 제공해 주신다. 너무 감동스러운 매장운영이다. 이렇게 언제까지 운영될지 모르겠으나 정말 감동스러웠다.

이렇게 좋은 대우도 받았는데 그냥 갈수 없지. 향수 하나 사버렸다. 평생 써도 다 못쓰고 죽을 정도로 향수가 많으나 또 사버렸다.

향수 세계의 끝은 어디일지. 좋다는 향수 사면 또 새로운 브랜드 나오고…정말로 향수는 유혹을 얼마나 억제하느냐가 관건인거 같다. 언젠가 향수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리해 글을 써보고 싶다.

향수를 예쁘게 포장해 주신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단점을 꼽으자면, 결제를 하려는데 카드 단말기가 staff only 공간에 있다. 왜 카드 단말기를 바깥에 두지 않느냐, 해외에서는 카드를 안보이는데로 가져가면 카드 복제하는게 아닌가 의심을 받을때도 있다는 등의 의견을 건넸다. ​그런데 카드 단말기 전선이 안쪽공간에만 되고 바깥에서는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거 같다. 또 한섬, 현대백화점 등 현대백화점그룹인데 포인트 적립과 사용 등이 제각각. h포인트라고 있는데 완전한 통합이 안되어 있는거 같았다. 한섬 회원가입해 포인트를 받았는데, h포인트로는 안넘어가는거 같았다. 뭔가 복잡해 말도 안했다. 포인트들이 이렇게 제각각이고 복잡하면 소비자는 소비를 잘 안하는 거 같다. 나도 다음번 갈때 포인트 남은거 쓰고 더 이상 소비를 안할거 같다.

​암튼 오랜만에 제대로된 향수 매장을 다녀온 거 같아 기뻤다. 낯선 브랜드를 탐험하고, 수많은 향기를 맡으며 영감을 얻고 이미지를 연상하는건 바다 한가운데서 헤엄치는 느낌과 유사하다. 끝이 없는 걸 알지만 계속 알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게 향수의 세계가 아닐까 한다.